[이정아 기자의 바람난과학] 8K는 타조를 위한 TV인가요?

2019년 1월 11일 (금) 오전 6:14

175 0

[이정아 기자의 바람난과학] 8K는 타조를 위한 TV인가요?

요즘 내로라하는 글로벌 기업들이 스스로에게 주문하는 미션인 것만 같다. 올해 세계최대가전박람회(CES)는 그야말로 8K TV 전쟁터였다. 삼성전자는 이번 CES에서 8K UHD TV(QLED)를 처음 선보였다. 디스플레이 크기가 무려 98인치다. 이에 뒤질세라 LG전자는 88인치 8K TV(OLED)를 내놨다. 뿐만 아니다. 소니도 샤프도 중국 내 TV 1ㆍ2위 업체인 하이센스와 TCL도 8K TV를 선보였다.

기술적으로만 보면 8K 화질은 4K 대비 4배, FHD 보다 16배 선명하다. 그래서 기업들은 이런 정보를 앞세워 ‘이제는 8K TV 시대’라며 마케팅을 했다. 권봉석 LG전자 사장은 “8K TV 라인업을 다양화 하겠다”고 전했고 김현석 삼성전자 사장은 “8K를 넘어 16K TV 그 이상도 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여기서 언급되지 않는 사실이 있다. 바로 우리 눈에 대한 이야기다. 과연 우리의 눈은 8K TV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인간 시력의 한계는 없을까.

더 큰 사이즈의 모니터가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있지만, 그뿐이다. 노트북에서 1m만 떨어져도 필자는 지금 보고 지금 보고 있는 영상이 4K 영상인지 FHD 영상인지 솔직히 구분하기 어렵다.

그러다 최근 며칠간 쏟아지는 가전업체들의 8K TV 발표 소식에 의문이 들었다. 과연 인간은 8K 영상이 4K 영상보다 4배 더 선명하다고 체감할까. 만일 실질적인 차이를 느낄 수 없다면 1000만원이 넘는 8K TV를 집안에 둘 필요가 있을까.

우리 눈의 해상도는 두 점을 구분해낼 수 있는 경계의 각도로 결정된다. 그리고 이 각도가 작을수록 시력이 좋은 사람이다. 인간의 표준 시력을 1.0이라고 보는데 이는 눈과 두 점 사이의 각도가 1분(分)일 때를 말한다. 1분은 1도를 60등분 한 각도다.

그런데 해상도만 가지고 절대적으로 말할 수 없는 점이 있다. 모니터 크기가 작을수록 그리고 모니터에서 멀어질수록 우리 눈이 받아들이는 해상도는 떨어진다는 점이다.

4K UHD 영상이라도 모니터 크기가 65인치에서 32인치로 작아지고 시청 거리가 0.5m~2m로 멀어지면 우리 눈이 체감하는 해상도는 낮아진다.

이제 그래프를 보자. 사람이 해상도에 따라 물체의 크기를 구별하는 공식은 2x거리xtan(1/60x1/2). 이 값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그래프는 해상도와 TV 모니터 크기에 따라 시력 1.0인 사람의 최적 시청거리를 보여준다. 최적 시청거리란 디스플레이 해상도의 효과를 최대한 볼 수 있는 거리다. 운이 좋게도 필자의 시력은 1.0이다.

그리고 그래프를 토대로 8K의 가장 큰 규격인 삼성전자의 98인치 TV를 시력 1.0인 사람이 보는 경우, 최적 시청거리는 다음과 같다.

다시 말해 삼성전자 측은 올해 CES에서 첫 선보인 해당 TV를 소개할 때 시력 1.0인 사람이 0.96m 내에서 TV를 봐야 최상의 해상도를 느낄 수 있다고 말해줬어야 했다. 이 거리를 넘어서면 우리 눈에는 8K 영상이나 4K 영상의 해상도 차이를 구별하기 어렵다. 물론 TV를 매우 가까이서 보거나 매우 뛰어난 시력을 가졌다면 4K와 8K의 해상도 차이를 느낄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조건에 해당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LG전자의 88인치 8K TV는 어떨까. 시력 1.0인 사람이 해당 TV의 영상을 가장 선명하게 즐길 수 있는 최적 시청거리는 0.87m.

그런데 3D 기술로 구현된 24평형 아파트 도면에 84인치 TV, 그리고 소파를 배치해 그 거리를 측정했더니 3.1m다. 24평형 아파트의 거실 길이는 일반적으로 약 3~4m라는 점을 감안하면, 8K 해상도를 만끽하기 위해서는 거실 가운데 보다 훨씬 가까운 지점에서 TV를 봐야만 한다.

필자는 인근 마트의 매니저에게 양해를 구하고 블라인드 실험을 통해 직접 4K UHD 영상과 FHD 영상의 차이를 구분해 보기로 했다. 영상은 필자가 평소 챙겨보는 드라마 ‘스카이캐슬’을 선택했다. 그리고 반복 실험을 통해 두 가지 사실을 알아냈다.

① TV에서 0.3~0.8m 떨어진 지점에서는 화질의 차이를 느꼈으나 0.8m 지점을 넘어 조금 헷갈리더니, 1.3m 지점에서는 해상도 차이를 구별할 수 없었다.

② 1.5m 내에서는 하얀 얼굴을 가진 연기자와 그 뒤로 검은색 배경이 드러나는 장면에서 차이를 구분했지만 1.8m를 넘어서자 헷갈리기 시작했다.

1.8m 내에서 TV를 봤을 때 명암 대비가 큰 장면에 한해서 화질 차이를 조금 더 느낄 수 있었던 건데, 이는 TV와 매우 가까운 거리라서 자막과 화면을 동시에 보는 영화 시청은 불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로써 필자의 눈은 이미 고화소·초고화질 TV에 충분히 노출돼 있었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다시 의문이 생긴다. 삼성과 LG 등 선두권 TV 업체들은 도대체 왜 8K TV 경쟁에 사활을 걸까. 판매 비율로 봤을 때 8K TV 시장은 0.01%로 분석(IHS마켓)되고 있기까지 한데 말이다.

이에 삼성전자 관계자는 “범용성이 높은 TV 시장에서는 업체 간 기술 차이가 크지 않다”며 “그래서 압도적인 기술 격차로 프리미엄 TV 시장에서 차별화를 보여줘야만 한다”고 말했다. ‘언제든 후발 업체에 따라잡힐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라는 것이다.

삼성이 인공지능(AI) 기술이 적용된 8K TV라고 거듭 강조하는 이유와도 맞닿아 있다. 민병석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VD)사업부 수석은 “저화질(HD급) 영상이 입력돼도 스스로 밝기·명암·화면 번짐 등을 보정해 8K 수준의 고화질 영상을 만드는 AI 알고리즘이 8K TV에 탑재돼 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그는 이렇게도 덧붙였다. “전시장에서는 최적의 상황만 보여주니 차이가 안 느껴질 수 있지만 실제 사용할 때는 (타사 제품과) 차이를 느낄 수 있습니다.”

4K 드라마를 제작할 수 있는 고가의 촬영 장비나 데이터 기술력을 갖춘 국내 프로덕션이 거의 없다는 점을 보면, 고화질 영상 전환 AI 기술이 갖춘 가치는 충분하다.

다만 그가 언급한 것처럼 8K TV가 가진 TV 자체로서의 매력은 CES 전시장에서 잘 표출되지 못하는 분위기다. CES에 방문한 한 가전업계 관계자는 “일반적인 가정용 TV를 기준으로 할 때 4K와 8K는 육안으로 식별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했고, 한 기업연구소 연구원은 “이미 4K TV도 우리 눈에는 과잉 스펙이라서 차라리 유튜브 검색이 매우 편리한 TV를 만드는 게 나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의 칼럼 ‘추석이란 무엇인가’ 문체 일부를 차용했다는 사실을 밝힙니다. 아울러 국내 8K TV가 출시되면 눈으로 직접 8K 해상도 차이를 구분한 뒤 이에 대한 정보를 자세히 담은 이야기를 연재하겠습니다.

※ 바람난과학 인스타그램(@science.baram)에서 연재 뒷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세상의 질문에 과학으로 답하겠습니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출처 : biz.heraldcorp.com

카테고리 페이지로

Loa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