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 ‘무시’, 절차도 ‘부실’…9개월된 역사교사, 국정 교과서 집핕진 선발 이유 알아보니

2015년 12월 12일 (토) 오전 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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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 ‘무시’, 절차도 ‘부실’…9개월된 역사교사, 국정 교과서 집핕진 선발 이유 알아보니

[헤럴드경제=박세환 기자] 역사를 가르친 지 9개월밖에 안 된 10년차 상업 교사가 국정 역사 교과서 집필진으로 선정돼 논란을 빚고 있다. 집필진 선발 절차도 면접이나 연구실적ㆍ역사관에 대한 검토 없이 서류 면접 하나만으로 선발한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특히 지난달 최몽룡 서울대 명예교수가 성추행 논란으로 사퇴한데 이어 또 한 명의 집필진이 사퇴하면서 국정 역사 교과서 집필진에 대한 선발 기준과 절차, 명단 공개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자격 논란에 상업교사 자진사퇴…벌써 두번째=12일 국사편찬위원회(이하 국편)와 교육계에 따르면 국정 역사교과서 집필진에 합류했던 서울 대경상고 김형도 교사가 지난 10일 자격논란에 휩싸이면서 집필진에서 자진 사퇴했다.

김 교사는 지난 9년 동안 상업 과목을 가르쳤다. 그는 올해 1학기부터 상업과 함께 1학년 4개반을 대상으로 한국사도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한국사를 가르친다’고 썼지만, 자신이 상업도 가르치고 있다는 점은 굳이 기재하지 않았다. 김 교사는 대학에서도 역사가 아니라 통상 분야를 전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경상고 홈페이지도 ‘교직원 소개’란에 김 교사의 담당 교과를 ‘상업’으로 적어놓았다.

국편은 이에 대해 김 교사는 교육대학원에서 역사교육을 전공하고 한국고대사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박사 논문을 준비 중이라고밝혔다.

김 교사는 이같은 사실로 국정 역사교과서 집필진 자격논란이 일어나자 바로 사퇴했다. 김 교사는 “자신이 집필진으로 공개된 것은 괜찮지만, 자신으로 인해 역사교과서 편찬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매우 죄송한 마음이다”라고 국편에 사퇴의사를 전달해왔다.

국편이 지난달 4일 홈페이지 공지한 ‘교과서 집필진 공모 공고문’에 ‘역사, 사회과학 관련 학계의 교수 및 연구원, 현장 교원’이라 자격 요건을 밝히고, 현장 교원에 대해 ‘교육경력 5년’이라고 명시해 놓고도 역사 관련 교육 경력을 확인하지 않고 해당 교사를 뽑은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김성수 새정치민주연합 대변인은 “몇 십년간 역사를 가르쳐 온 교사들이 수두룩한데도 고작 역사수업을 1년도 하지 않은 교사를 집필진으로 뽑았다니 어이가 없다”면서 “정부가 자격도 안 되는 집필진을 구성해 친일과 독재를 두둔하는 엉터리 역사교과서를 만들려고 한다는 의심이 사실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 대변인은 이어 “국정 역사교과서 집필진에게 씌운 복면을 벗기고 투명한 교과서를 집필하라”고 촉구했다.

이에 대해 국편 관계자는 “공모기준에 ‘교육경력 5년’이라고 적었기 때문에 (김 교사를 뽑은 것은) 서류상으로 하자가 없다”면서 “이 분이 고대사 박사 과정까지 수료하고 올해 한국사를 가르치고 계시기 때문에 기본요건을 갖췄다고 봤다”고 밝혔다.

조한경 전국역사교사모임 대표는 “상식적으로 역사교과서 집필진을 뽑으면서 상업 등의 교육경력을 ‘경력 5년 이상’의 범주에 넣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또 국편이 밝혔듯이 국정 역사교과서 집필진 선발 절차가 서류심사만으로 이뤄졌을 뿐 면접이나 연구실적ㆍ역사관 검토는 전혀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국편 고위 관계자는 “공모 집필진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지원자들로부터 지원서류만 제출받았을 뿐 이후 면접이나 학위 및 연구실적 검증 등의 다른 절차는 거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지원자들이 대부분 현직 교사와 대학 연구원들인 점을 감안해 기본적으로 신뢰했다”며 “서류만 검토해도 충분히 양질의 집필진을 가려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오직 응모자가 서류에 적어 제출한 내용만으로 집필진을 선발했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국편은 김 교사의 본래 담당 과목이 한국사가 아니라 상업이라는 사실도 몰랐던 것으로 드러났다. 국편 관계자에 따르면 국편은 지원서에 교육 경력 기간과 역사(한국사) 교사 자격증 보유 여부만 기재하도록 했다는 것. 김 교사는 상업과목 교사지만 2010년 한국사 교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이 때문에 김 교사는 ‘자격증이 있다’고 썼고, ‘대학원에서 역사 관련 연구로 석사를 취득하고 박사를 수료했다’고 기재했다.

▶‘남경필 주니어, 사요나라’ 메시지 ‘황당’…‘비밀 유지만 강조하는’ 국정 교과서, 투명하게 진행돼야=이렇듯 면접 등 세밀한 검토없이 국정 교과서 집필진을 선발하면서 자격 미달인 김교사가 선발된 것이다.

앞서 김 교사는 지난 8일 학교 전체 교원들에게 자신이 국정교과서 집필에 참여하게 됐다는 집단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메시지는 A4용지 3장 분량으로 김 교사가 12월까지만 학교에 나오고 내년 1월부터 13개월간 역사교과서를 쓰게 됐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김 교사가 보낸 메시지에는 “(집필 관련) 1월부터 13개월간 역사교과서를 함께 쓰게 됐다. 저 말고도 46명과 어떻게 생활해야 할지 모르겠다. (집필진이) 모이면 (국편이) 얼마나 비밀을 강조하는지 질릴 정도”라고 전했다.

특히 그는 “자신이 남경필 도지사의 고종사촌 동생인데 남 지사의 도움 없이 이 학교에 왔다. ‘대한민국 집필’ 후 13개월 뒤엔 많이 달라져 있을 것”이라며 “‘남경필 주니어’가 되어서 돌아오겠다”는 말까지 써 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메시지를 직접 읽은 대경상고의 한 교사는 “친일·독재 미화 의심을 받는 국정 역사교과서 집필진으로 뽑힌 사람이 공개 메시지에 일본말로 끝나는 인사말을 적어놔서 기가 막히고 화가 났다”고 말하기도 했다.

현재 지난달 성추행 논란으로 최 교수가 사퇴한데 이어 이번 김 교사의 사퇴로 집필진은 46명이 됐다. 공개된 사람은 이화여대 신형식 명예교수 단 한 명이다. “집필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교육부의 입장도 이해는 되지만, ‘깜깜이 집필’ ‘비밀 유지’에 대한 우려가 크다.

국편은 다음주 초 국정교과서 편찬기준을 발표하는데 내년 말쯤 교과서 편찬이 끝날 때까지 집필진을 공개하지 않겠다는 방침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집필진 선발의 ‘첫단추’부터 잘못 끼운 국정 역사교과서의 제작에 누가, 어떤 과정을 거쳐 선정됐는지를 공개해야 한다. 국정교과서에 대한 투명성을 높이고 신뢰도를 높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출처 : biz.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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