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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 친필 휘호 ‘광명정대’ 왔다…암살당하기 석달전 글씨

2018년 8월 13일 (월) 오전 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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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 친필 휘호 ‘광명정대’ 왔다…암살당하기 석달전 글씨

백범(白凡) 김구(1876~1949)가 안중근 의사 순국 39주년을 기념해 쓴 글씨를 독립운동가 김형진(1861~1898)의 후손이 문화재청에 기증했다. 이 글씨는 지난 5일 국립고궁박물관으로 인도됐다.

고국으로 돌아온 김구의 글씨 ‘光明正大’(광명정대)는 1949년 3월26일 독립운동 동지인 김형진의 손자 김용식에게 써 서 선물한 것이다.

독립운동가 김형진은 김구와 1895년 무력으로 일제를 격퇴할 것을 결의하고 중국 선양에 원조를 청하기 위해 동행했으며, 1896년에는 김구와 함께 의병에 가담해 활발하게 활동했다. 그러나 1898년 동학의 접주로 활동하다가 체포돼 일제의 고문 끝에 생을 마감했다. 1990년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광복 후 김구는 김형진의 유족을 자주 보살폈으며, 암살당하던 해인 1949년 김용식에게 ‘光明正大’를 써 줬다. 이후 이 글씨는 1960년대 김용식의 6촌 동생 김태식에게 전달됐고, 김태식(83)옹은 1973년 이를 가지고 미국으로 이민했다. 김옹은 올해 4월, 2021년 개관 예정인 ‘국립 대한민국 임시정부기념관’에 ‘광명정대’를 전달해 줄 것을 요청하며 주시애틀대한민국총영사관을 통해 정부에 무상기증 의사를 밝혔다.

홍소연 심산김창숙선생기념사업회 전시실장은 “1948년 4월 남북협상 전부터 백범은 친일반민족세력에게 좌익으로 몰리기 시작했다. 1948년 8월 대한민국 정부가 들어서고 9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세워지면서 분단이 고착화됐다. 그럼에도 백범은 ‘제2의 독립운동’이라며 통일운동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1949년 들어서면서는 백범을 암살하기 위해 정치인·경찰·군인들이 조직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해 3월26일 안중근 의사 순국 39주년을 맞으며 백범은 안중근의 ‘光明正大’한 삶을 곱씹으며, 젊은 시절 의기투합했던 동지 김형진의 손자에게 ‘光明正大’를 써주었다. 어쩌면 백범도 스스로에게 ‘光明正大’한 삶의 마지막을 다짐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꼭 3개월 후에 백범은 암살당했다. 백범은 같은 휘호를 여러 번 썼다. 하지만 ‘光明正大’라는 휘호는 처음 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화재청은 “지금까지 알려진 바 없었던 백범의 휘호여서 그 희소가치가 클뿐 아니라, 필체에서도 백범의 기백이 잘 드러나 있다고 전문가들이 평가했다”고 전했다.

출처 : new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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